그것은 소년이고 싶은 남자 어른들의 판타지.
치적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치적이던 시기는 아름답게 포장하는
뭐 잔인하게 말하면 그런 이기심?
영화관에서 보면 콧물을 훌쩍였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에서는 이런 저런 감정이 든다기 보다는, 그저 멀뚱-해진 기분이 드는 영화로구나.
장면이 예쁘긴 예쁜데, 잘 모르겠다...
보면서, 오히려 이런 저런 다른 개입들이 많았지만 생략.
그리고 나의 선호곡은
그것은 소년이고 싶은 남자 어른들의 판타지.
치적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치적이던 시기는 아름답게 포장하는
뭐 잔인하게 말하면 그런 이기심?
영화관에서 보면 콧물을 훌쩍였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에서는 이런 저런 감정이 든다기 보다는, 그저 멀뚱-해진 기분이 드는 영화로구나.
장면이 예쁘긴 예쁜데, 잘 모르겠다...
보면서, 오히려 이런 저런 다른 개입들이 많았지만 생략.
그리고 나의 선호곡은
잠깐 지인의 결별 소식을 듣고,
그 전에 이야기를 나누며 결심을 굳히는 자리에 내가 같이 있었기에.. 미묘한 생각이 잠깐은 든다.
사랑은 타이밍, 이라지만, 사랑이 타이밍인지는 모르겠다.
사랑은 눈치없이 타이밍도 못맞추고 시때를 모르고 찾아온다. 오히려 타이밍인 것은 연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와 같은 어떠한 '결정'이다. 관계를 결정짓고, 이후의 온갖 일들을 감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는 타이밍이, 사랑과 별개로, 개입하게 마련이다.
어리면 어려서, 혹은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둘 간의 타이밍은 그렇게 쉽게 딱-맞아떨어지질 않는다.
심야식당을 보며 맥주를 한 잔 홀짝이다가, 그럼 나에게 그리운 맛은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병맥주를 유리잔에 따라 마시는 것마저 매우 그리운 나이가 되었던가? 한다.
물론 언제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두 일제 지인들의 영향으로 또, 회사가 끝나고 나름의 호젓한 일식 선술집에서 잔에 맥주를 따르는 일은 그 때는 철이 덜 든 때라 웬지 어른이 된 듯한 주황색 백열등 밑의 그런 분위기가, 어느새 그리운 오래 전 기억으로 남다니.. (새삼 충격스럽기도.)
다시 그런 것 말고, 그리운 맛은 무언인가 생각을 곰곰이 해보다가,
만두인가? 그것은 언니가 좋아하는 것이고.. 아주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내가 만들다 다친, 잡채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으나, '그립다 그립다'라기 보다는 그건 뭐랄까, 모녀 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 하나같은 것이고..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가지고 다니던 덩치에 비해 엄청 커다란 조지루쉬 도시락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 집의 혹은 엄마의 높은 엥겔 지수는 내 도시락 통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다른 친구들이 얄쌍한 도시락 통으로 뭔가 도회적인 이미지를 (아주 주관적인 내 기준으로,, 게다가 그 얄쌍한 도시락통의 하이라이트는.. 스댕 밥통.. 웬지 엄청나게 부러웠다) 뿜어내는데 비해, 나의 커다란 코키리 도시락통은 지금 생각하면 색도 여리여리 이뻤지만, 그 때는 '엄청 커!' 라는 생각에 그 얄쌍한 밥통들이 부러웠던 것 같음.
물론, 엄마가 처음 어디일까 남대문? 이런 곳의 수입상가를 뒤져 그 소위-코끼리 도시락이라 불리우는 조지루쉬를 사오던 날에, 없는 주부 살림에 얼마나 사치였을까 생각이 이제서야 들긴 한다. 여름이면 여름 옷으로 겨울이면 겨울 옷을 입던 코끼리 밥통의 맨 밑자락에,
언제나 열기 힘들어서 버둥댔던 물통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가끔 국이 들어있기도 했지만, 보리차나 옥수수차같은 것이 뜨겁게 들어있어서, 언제나 그 고무패킹이 한껏 압축되어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나고야 겨우 열리는 것이었다. 따신 물을 마시게 하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고무 패킹만한 것이었을까나.. (아니면 엄마는 손아귀 힘이 세니까.. 나의 악력을 고려치 않은 그녀의 힘자랑..?)
튼,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했듯이, 매일을 5첩 이상의 반상으로 호화 밥상을 20여년간 받아 온 나에게는, 여느 음식점에 가서 '반찬 많다!'라고 휘둥대며 젓가락을 바지런히도 움직이는 친구들이 그다지 이해는 안갔다. 한정식 집에 가서도, 이런 정도는 우리집에 누구 생일이면 으레 보는 음식들인데 뭐 이런걸 굳이 놀라와 하나. 하는 자랑 아닌 자랑을 했지만,
나름 나와서 살다보니, 그리고 엄마의 유일한 낙인 요리와 대접이 내가 보기에 이제는 내딴에는 안스러워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보니, 그런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스레 여겼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생긴다.
돌아가서,
그리운 음식이란, (또 생각해보니 내 도시락통을 열면 친구들이 그렇게도 집어먹어댔던 엄마표 양념의 꼬마 돈까스는.. 또 내 그리운 음식이라기 보다 또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식) 엄마가 너무 많은 요리들을 해줘서 하나 꼬집어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우리가 덕이라고 부르는 더덕? 싸우면 만들어주는 잡채? 하얀국이라고 부르는 우족탕? 여하튼, 그 모든 것보다 코끼리 밥통이 생각나는 건, 웬지 젊은 엄마의 기나긴 뜨게질이 그 밥통을 완성하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만화책보다, 드라마가 나는 더 좋네.
어제부터 초코케잌같은 게 머릿 속을 배회하는 것이, 분명 이 자는,, 자각하고 있지만, 하기 싫다는 그 욕망이 너무 큰 나머지 제 3의 물질 초코케잌같은 것이 이 놈의 욕망 충돌을 중재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인듯 싶지만, 허리를 둘러싼 살들 때문에 다시 제4의 스트레스 생성 중인, 이 아이러니한 현실.
그러고보면, 영국에서는 대단하게도, 혹은 독하게도,
간식으로 다이제스티브 2개 (많은 건가..)만을 섭취하고 (아 물론, 중간/기말 스트레스로 다량의 벤앤제리를 섭취했지만) 방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해대서, 결국 한국에 갈 때는 심지어 살이 빠져서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역시 나이탓(으로 돌려보자면) 대사량의 비원만함과 될대로 대라식의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무분별한 섭취본능으로 인해 늘어가는 살들을 붙잡아봤자. 튼.
갑작스레 낮아진 날씨로, 옷장에 고이 접어두었(다고 말하기 어렵고, 던져둔)던 추리닝을 꺼내입고 집 안에서 뒹굴며, 때때로 숲을 휘감는 바람소리를 듣자니, 대낮에 들어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며, 집에서 빈둥대는 것도 (물론 여파가 두렵지만)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제 문득 샤워를 하며 '뭐 어쩌리'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또 한 단계 달라진 터.
살다보면, 툭-하고 뭔가가 변경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그 정도의, 툭- 정도의 변화는 아니지만, 뭔가 가끔 정말 머릿 속에서 소리가 나면서, 혹은 툭-하는 진동의 촉감을 느끼면서, 삶의 태도나 입장이 변하는 때가 있다. 하루하루를 너무 타성, 혹은 타성이 너무 나쁘게 들린다면 관성,에 따라 살던터라, 내가 밟지 않으면 나자빠질 것 같은 이 페달이, 사실은 체육관에 있는 자전거라서 내가 밟지 않아도 내가 넘어지는 일도 없거니와 세상에 1%의 변화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기도 하고, 자꾸 페달을 밟아야 할 것 같아서 하루하루를 밟다보면 나를 질타하던 트레이너도 퇴근한 지 오래고 어느새 불꺼진 체육관에 덩그러니 남아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그렇다. 뭐 물론 그 페달을 안밟겠다-는 건 아니지만, 왜 밟는가, 나는 복근을 원하는가, 체력을 원하는가, 혹은 페달밟기 자체가 나의 소명인가, 등등 왜에 대한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은가 싶은거다.
여튼, 뭐 어쩌리-라는 생각이 든 건, 우선 여름이 가까워져서이고, '자- 계속 다음학기 다음학기 하는데, 이 여름이 지나고 다음 학기는, 나에게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자의에 의해, 그 다음에는 타의에 의해 (들었을 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내 인생이 타의에 의해 좌우되려고 할 때는 못견디겠다, 물론 타의인 척 하여 은근슬쩍 결정할 때도 있지만 이는 결국 타의인 척 하는 자의이므로), 다시 자의면 어떠고 타의면 어떠리-로의 마음의 여유(혹은 헛짓거리)가 생기니 마음은 한편으로 불편하면서도 편하지만, 여하튼, 뭐 어쩌리-하는 생각이 들며 자려고 누웠다가 어쩌리-라는 생각에 좀 깼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내가 속을 썩인 분들도 많을테고,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많고, 많은 일들도 있었지만)
여하튼, 고민해봐야 바꿀 수 없는 건 고민이 아니라 그저 잡생각이므로, 쓸데없이 흰머리를 만드느니, 그냥 편하게 잡생각 없이 살자는 주의로.
역시 고민할 것은 왜 살은 빠지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것 정도가 유익하다.
도서관에서 왜 이리 집중이 안되나 했더니, 너무 많은 요인들이 있었다.
고즈넉한 9시 전의 아침과, 적당한 햇볕과 통풍, 길고 커다라고 짙고 둔탁한 책상도 아닌 식탁도 아닌,
그리고 맛은 없지만 여하튼 아침을 위한 커피.
그 모든 것들이 없구나- 에휴.
1.
오랜만에 저녁 공기를 학교에서 쐤더니, 기분이 스멀스멀하다.
4월 중순임에도 이미 공기는 부쩍 여름 냄새를 풍기며 저녁 나절에야 시원하고 기분좋은, 시원한 맥주를 부르는 바람을 부른다. 빌딩숲 속의 밤도 아니고, 도시의 가로수길도 아니고, 조용한 공원도 아닌, 학교의 저녁은 뭐랄까, {형체없는} 그리운 무언가가 있다. 뜨겁고 분주해야 할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 남은자들의 고즈넉하고 두런대는 소리가 (물론 간혹 그런 분위기를 깨버리는 hey girlz 이러고 앉은 것들도 있지만 그것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다) 가끔 바람에 스치는 시간은.. 물론 내가 여기서 자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 지만. 튼, 모든 것은 안전해야... ;
뭔가 드라마 스트리밍 사이트를 알려줘서, 어제 오늘 몇 개를 보다가 문득 옆의 광고들에 눈이 갔다. 시력 조정(?)을 위한 수술이 한 때 온라인 광고를 지배하다가, 지금은 또 그것에 대한 여파로 그 이후의 후유증 관련한 광고들이 온통이다. 그런 일련의 트렌드를 잠깐 생각하다가, 워낙 모든 것들은 모가 아니라고 도인 것을 계속 수정하고, 가다듬고, 덧난 데를 숨기려고 다시 시도하다보면, 이제는 이도저도 아닌 또한 물러설 수도 없는 어떠한 상태에 다다르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비단 그것이 타고난 것을 수정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덧난 것을 지우기 위해 밴드를 붙이고 붙여봐도 덧난 곳에 통풍이 되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가 될 수도 있진 않은걸까. 어차피 사람이 겪은 일의 기억을 도려낸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오늘 저녁과 같이 선선한 바람에 떼다 내놓아두면, 또 어차피 사람은 잘 잊는 생존 본능의 동물이니, 무슨 기억이건 무슨 관계건 안좋은 일들이건 다 잘 아물어서 딱지가 똑 떼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뭐, 약간의 상흔이야 대수랴- (라고 물론 말만 해본다, 그러나 특정한 실체가 아닌 그저 생각의 이야기이므로 패스)
2.
어제 자다가 갑자기 '무.. 생각이 안나지. anonymity 뭐라고 번역하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 튼,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anonymity에 기대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본인을 둘러싼, 뭔가 글의 거리들을 제공하는 주변인들을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연구 관련해서 잠깐 생각이 멀리 간 것 같지만, 자다가 이런 생각이 나는 건 또 머지.
튼, 블로그에 글을 쓰면 내가 나임을 밝히지 않는고로 (물론 쉽게 드러날 수도 있지만, 명확하게 나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의미에서) 글의 소재 혹은 inspiration을 주는 인물들은 쉽게 무명씨로 만들어버릴 수 있고 (물론 이 또한, 너무 쉽게 탄로날 수도 있지만 이름과 링크까지 친절하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일단 내가 {상대편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판단한 그 상황에 대한 꼬리무는 생각을 남기는 것이 가능해진다. 내가 나임을 밝히지 않는 이상, 무명씨들의 신변을 보호함과 동시에 내 생각을 재잘댈 수 있는 이중 효과가 생긴다. 무명씨들의 추상성으로 인한 글쓰기의 확장성이 가능한 것도 좋은 영향으로, 특정한 사건에 대한 report가 아닌, 사변적 생각을 나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뭐래는지 모르겠지만, 튼, 어제 오늘의 생각 정리 끝. (은 물론 아니다. 하나 더 생각난 게 있지만 귀찮음, 그것은 잊어버릴 수도 있는데.. 어쩐다.)
인터뷰 4개로 녹초가 되어버려서 10시부터 잤더니 벌써 깬다. 놀라운 건, 새들은 이미 지저귀고 있다는 사실. 방에서 새 소리가 잘들리긴 하는 편인데, 이렇게 일찍 지저귀는 새도 있그낭.
인터뷰들이 길진 않았지만, 심지어 첫번째껀 인터뷰이의 지루해함으로 10분 가량 밖에 못했지만, 장소 이동과 심적 부담감 등등만으로도 사람은 쉬이 지치.. 내가 쉬이 지치니.. 서울같은 DC에서 장시간 있다보니, 서울에 있던 리듬이 약간 살아난 것 같아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치는 것은 바뀌지 않는 듯.
사실 꿈 내용이 더 뭐랄까. 뜬금없어서 기억해두고 싶었는데, 왜 이런 꿈을 꿨지?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 가지다 보니, 오늘 있었던 일들도 기억해둘만하기도 하고.. 요즘엔 통 리플렉션이 없는 생활, 혹은 리플렉션을 안하려고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좀 글을 써놔야 싶지 하는 생각이 든다.
꿈은 별 게 아니었고, 엄마가 나왔고, 자세한 건 쓰기가 좀 그런 내용이었고,
갑자기 이동하여 어느 순간에는 로비 윌리암스 콘서트에 갔는데, 그것이 내가 콘서트에 등장한건지, 콘서트를 bird eye's view로 본건지, 관객으로 본건지 그 세가지가 합쳐져서 잘 모르겠다. 여튼, 누군가를 찾으러 갔던 거 같은데 결국 로비 윌리암스와 '나'인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thing을 부르는 걸로.. 라이브를 하면서 혹은 들으며 꿈에서 깼다. 도통 이해는 안간다. 오늘 내가 들은 건 드림걸즈와 2ne1의 두세곡 무한 반복 뿐이었는데.
여튼, 잘 모르는 아이들을 인터뷰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듯 하다. 지난 번만 해도, 두 명의 새로운 인터뷰이 중 하나는 거리낌없이 자기 이야기를 잘 해주었고, 한 명은 원래 과묵하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의 인터뷰이 대상들 중 하나는 인터뷰하기 싫다고 해서, 아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게 싫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돌아보면 내가 그랬나? 하지만, 한국 아이들의 나이로 6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는 새로운 교사나 새로운 사람을 봤을 때 뭔가 신기하고 신선해서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이 '나는 선택받았어'라고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아니면,, 내 매력지수가 마이너스여서.. 라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ㅠ 튼, 아이들의 반응이 신기. 아니면 인터뷰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너는 선택받았어(물론, 그 모두가 대상이므로 그건 그짓말이지만), 재밌을꺼야, 이렇게 접근을 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튼
예전에 누구와도 얘길했던 것 같은데, 박사과정 친구들 중 미국아이들은 순수한 편인 것 같다는 (이상하게 우리과 애들은 내가 그들에게 자주 노출되어서인지 그저 한국애들과 비슷한 편.. 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outgroup 동일성 현상일 수도)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 들었던 한국의 유난스럽고 되바라진 아이들에 비해, 여기 중학교 아이들은 좀 더 '애'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많은 이야기를 해보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내가 자주갔던 곳은 흑인 밀집 지역의 중학교여서 sEs가 주는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그냥 그 나이대에 행동해야 할 것(그런 것이 있다면)처럼 행동한다. 는 느낌이 든다. 굳이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어드바이스를 해줘'라고 하면 나보다 어른인척 'no offense, 근데 니네 좀 이래야지~'라고 해서 귀여운 면들도 있다. 헐리우드를 꿈꾸는 아이들이 BET와 같은 흑인 방송을 보며 자라나며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 일을 도와주고, 뭐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물론 일반화 불가다, 몇명이나 이야기를 했다고)
오늘 인터뷰한 조금은 믹스드되어 있으며 나쁘지 않은 편의 학교의 아이들은 나랑 친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이들의 약간은 내성적인 성향일 수도 있으나, 뭐랄까 조신한 아이 둘을 만난 느낌이다. 한 아이는 spring break 전에 영국에 놀러간다고 크게 이야기한데다 '아빠가 뭔가 harvard alumni인가' 하는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인터뷰하면 나를 가지고 놀 수도 있겠다 싶었던 아이고, 한 아이는 내 보기에 그냥 아기같이 생긴 이쁜 (그러나 역시 다리긴 아기) 프로그램 내내 가방을 매고 있는 혼자 노는 아이여서 나는 뭔가 문제가 있는건가, 친구가 없나 하며 안스러운 한편 뭔지 모르는 calm한 매력이 있어서 계속 볼때마다 웃어주던 아이였다.
튼, 인상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내가 가진 단점을 무마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고, 그들이 가진 고충이나 생각은 들어봐야, 만나봐야 아는 것이다. (이건 인터뷰이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한다) 이 하버드 알룸나이인가로 의심했던 아이는 나름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주어 고마웠는데, 시작하자마자 내가 실수했나 싶었다. 인터뷰 항목 중 몇 학년이니?가 있는데, 항상 그 끝에 습관적으로 x학년인거 좋니?재밌어?라고 물어보게 된다. 대부분 뭐~ 그냥, 재밌어, 재미없어 학교 따분해,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데, 요 아이는 학교 재미없어 bully당해서. 란다. 예상치 못한, 교과서에서 나오던 그런 틴에이지의 고충 중 하나라, 웃으면서 다시 뭐? 니가 당하는 편인거야? 아니면 너가 하는거야? 라고 지금 돌아보니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해서 사실을 컨펌하고, 왜일까? 라고 또 괜한 질문을 했다. 좀 마음이 안좋았던 게, '그건 정말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내가 괜히 상처를 준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기에 이야기를 맞춰주니 좀 신나하긴 했지만 그 후의 질문엔 뭔가 시큰둥한 반응이라 내가 더 상처였다 ㅋ. 두 번 째 아이는, 다행히 왕따가 아니었다. 야호. (사실은 나의 사심인지라,, 걱정이 되어서 물어봤지만) 튼, 뭔가 처음에는 얘가 말은 조근조근 잘 하는데 하도 나를 안쳐다보기에 발달 장애가 있는지 걱정이었으나 내가 헛점을 보이거나 딴데를 쳐다보면 나를 쳐다보는 걸로 봐서는 그저 shy함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행이었다. 튼, 뭔가 전반적인 인상으로는 '이녀석, 좀 천잰가?' 이런 생각.
다양한 방면으로의 사람 관찰이 몸에 배어있다보니 내 주관적인 판단이 약간 앞서서, 이러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대화를 시작하는 편인데 (물론 대상에게 관심이 있거나, 관심이 있어야 할 상황에서) 그런 것들이 어떨 땐 아무 쓸모없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축적되어 결국은 내 자신의 '사람에 대한 통계와 내 리액션의 방향'에 대해 노하우(?)를 쌓아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뭐랄까, 사람이 내 관심대상이라는 것이 가끔은 너무 많이 사람에 대한 의존증을 낳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억측이며, 내 경우에만 해당되지만, 사람을 만나서 하는 일들에 더 에너지가 나고, 혼자 하는 일들을 팽개쳐 놓는... 아무리 봐도 오직 내 경우다 패스. 튼,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감정 이입이나 이 사람의 삶을 투영해보는 일이 남보다는 잦은 편이긴 하다. 그래서 약이 되는 것은, 그래도 남을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독이 되는 것은, 그래서 남을 너무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백그라운드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리고 먹는 것도 엄청나게 삶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주의라) 기계와 대화해야 하는 직업/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이것을 시뮬레이트해보자-안돼?-수정, 이러한 단계의 사고는 시뮬레이트 당시에 큰 몰입이 있고 전반적으로는 로지컬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한편, 조금 더 센서티브한 사람들이나 사람이 대상인 직업/백그라운드에서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정말 많은 생각, 대부분은 잡생각이나,이 머리를 지배하고 내 행동에 대한 이 사람의 넥스트 무브먼트를 미리 예측하는 경우는 뭐 다반사이다. 간혹 생각 속에는 나 자신의 주체가 홀랑 없는 경우도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백그라운드의 문제라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모티베이션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가, 전반적인 인생의 퍼포먼스(다양한 의미로의)를 중시하는가, 등등의 인생관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나는 사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다고 자평하는 편인데, 남들이 보는 나는 엄청 차갑거나 자아 몰입형 사람으로 보이거나, 심지어 무섭다는 건 뭐나..? 튼 그렇게 보이는 건, 내가 아직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의 바운더리를 넓히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성격의 반대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행동거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는 그리 생각하지만 별로 안그런건가? 실제로는? 튼,
갑자기 생각난 건, 예전에 '너 지금 뭘 하고 있지 않니'라고 물어보면 CCTV라고 단 게 아니냐며 놀라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건 관심과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정보를 가지면 너무나 충분하게도 예측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은 패턴대로 움직이고, 그렇게 쉽게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패턴이 망가졌다면, 망가졌다고 느낀다면 대상에 대한 관심이 객관화의 정도로 살아있다는 것이고, 또한 지속적인 정보가 인풋된다는 상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약 실제로 패턴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그 대상의 심리적 상태나 외부 환경이 변화를 겪어 이전과 유사한 형태의 패턴 정보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알게 혹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패턴 예측이 불가하다면, 관심이 없거나 정보 인풋이 없어서이다. 뭔 얘길 하는건지. 원.
새가 지저귐을 끝냈다. 2시에만 우는 새인가.
어찌보면, 때론 크지만 대부분 작은 노력을 하다보면 시간이 가면 얻어지는 것들을 시간이 되면 얻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지않을까.
물론 시간이 가는 동안 큰 노력들만 잔뜩 해야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마음먹기와 간명한 포기의 지혜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지 모른다. 내가 말하는 '얻어지는 것들을 얻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입장에서, 나는 좀 편편히 살자 주의자이기 때문에 뭔가 높은 목표를 가지고 스트라이브하는 부류에게는 나이브하기 짝이 없는 종족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여기서 크고 작은 노력이란 본인의 힘과 의사로 해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나 이외의 주체가 필요한 '사람의 마음 얻기' 등은 절대 해당사항 없음이다. 그건 정말 모르겠소이다 영역임.
여하튼, 같이 살고 있는 언니가 두달 후에 디펜스가 잡혔다고 하기에, 회고를 해봐달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조바심을 냈을까 했다는 대답. 스프링 브레잌 전후로 거의 1달 여간을 멍때리며 대체 나는 무엇을 하는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멍때리다 지치면 하는) 고뇌 아닌 그냥 잡생각을 하던 차에 참으로 단물과도 같은 (단물이라 함은... 듣고 싶은 말을 할 때 주로 느끼는 것이기에)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input = output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input이 어느 정도의 양이 채워지지 않는다 생각되면 불안해하거나, 혹은 output이 제대로 안나왔다 생각되면 input이 모자라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번뇌와 질책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상 증후군을 겪고 있는데,
때가 되면 시간이 가서 어쩌면 학위를 얻는 것이, 물론 그 하루하루들 중에 정말 때려치고 싶다 (더럽고 치사해서 지금이 그렇지만)는 생각이 들겠지만, 시간을 버텨내는 댓가로 주는 표창인건가.. 라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튼, 그런 얘기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첫번째로 '뭔가를 끝냈다'라는 날이기에 갑자기 기념 삼아 글을 남기고자 한 것임. 부활 성야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