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뤼딩의 동향은 희곡선과 맑시즘.
특히 희곡을 읽고나서, 그에 대한 연극을 못보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영화를 ;; 보며 슬퍼하고 있다는 허허... 
최근 LG에서 한 페르귄트를 보고, 먼가 연극도 영화 못지 않게 기대가 되지도 않긴 하지만서도...

Françoise Sagan
Bonjour Tristesse 슬픔이여 안녕 (1954)
빙점을 떠올리게 하는 심리중심 소설, 이래서야 컴퓨터 만들겠나. ;
Aimez-vous Brahm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59)
사강님이 '?'가 아닌 '...'라고 이야기를 하셨단다

Rosalind Picard
Affective Computing (1997)
귿귿.. 읽다가 사는 중

Kurt Vonnegut, Jr.
The Sirens of Titan 타이탄의 미녀 (1959)
반절 읽고나서, 읽었었음을 깨달은 기억력 제로로 치닫는 나
Galapagos 갈라파고스 (1985)

Tennessee Williams
The Glass Menagerie 유리 동물원 (1944)

Peter Schaffer
Equus 에쿠우스 (1973)
연극을 보고 싶었으나, 영화를 보고 급우울.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신입생 때의 필독서 중 하나였당.

리처드 파이프스
공산주의 (2006)

Paul Valery 폴 발레리
말라르메를 만나다 (2007)

H.마르쿠제
에로스와 문명 (2004)

분류없음 l 2009/06/09 21:38
꾸러미를 싸는 포장지는 본질적으로 아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면서도 귀중한 것으로 신성시된다. 포장꾸러미는 하나의 사고과정이다.  (중략)

포장지나 가리개 또는 가면이기도 한 상자는 그것이 은폐하고 보호하면서도 지하는 것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포장의 기능이 공간상 보호하는 데 있지 않고 시간을 늦추는 데 있는 것인 양 포장이 에워싸고 기호화하는 의미가 훨씬 나중까치 오랫동안 연기된다. 포장지에 제조의 노동이 투자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로써 물건은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고 신기루가 된다. 기의는 포장지에서 포장지로 도망다니고 마침내 당신이 그것을 붙잡게 되면 그것은 하찮고 어처구니 없으며 시시한 것으로 전락하고, 기표의 영역인 즐거움은 사라진다. 포장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찾는다거나 기호 속에 들어 있는 기표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것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꾸러미

다시 말하자면, 내가 선물을 주려고 바닥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절을 하면 상대도 이에 응답하여 똑같이 절을 한다. 땅바닥이라는 하나의 선이 절하는 사람과 절에 응답하는 사람, 그리고 예의의 목적인 선물 상자와 결합한다. 이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거나 별볼일 없는 것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로써 그림과 같은 형태에 교환행위가 추가되며 이 형태에 의해 탐욕스러움은 모두 파기된다.
-절

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



피츠제럴드는 놀라는 것 역시 하나의 재능이라고 했다던데, 생각보다 놀람이 적은 나는 딱히 이런 재능을 타고난 것 같지는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지적인 충격과 자극제가 나의 무딘 역치 이하의 값에서 (아주 훌륭한 책이라도) 머무를 경우, 시시하게 생각하니 말이다. 튼,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은 롤랑 바르트는 평이하게 글을 쓰면서도 그 속에서 놀랄만한 사유를 감추고 있어 곱씹게 되는 책이다.

바야흐로 가정의 달, 가족의 달 5월이다. 엄마 아빠의 선물을 챙겨야 하는 어버이 날에 이어 나의 동생 생일이 이어지고, 나의 친한 친구 생일이 동생 생일 바로 다음 날로 이어진다. 야호, 정말이지 남의 선물이지만 쇼핑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지금은 5월이다. 

쇼핑의 과학은 뒤로하고, 우리가 선물을 주는 방식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견해를 마주하다보면 선물이 너무나도 쉽게 던져지는 작금의 상황들을 되새기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선물이 흔해지게 되면서, 선물의 내용 자체가 중요해지고 또 대부분 내용을 규정짓게 되는 하나의 수단인 가격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선물이 그 내용물로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그야 말로 기표의 '의미'로 선물을 여겨지는 순간 선물은 고르는 이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괜한 스트레스를 부여하게 된다. -마치 뒤샹의 샘에서 기표 자체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순간 그 작품 자체를 잃게 되는 것처럼- 선물을 마련하는 이는 이 선물이 상대방에게 너무 보잘 것 없이 여겨질까하는 두려움으로, 선물을 받는 이는 이 선물의 가치만한 답례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선물의 의미가 이동된다. 

또 한 편으로는 (법적으로는) '기표로의 선물'을 인정하게 될 경우 오는 파장이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아무래도 선물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용어로 쓰일 경우 친교와 우정, 은혜라는 삼강 오륜을 찰지게 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표의 기의가 변질되면서 나타나는 역효과라고 할까. 그동안 구설수에 오르던 몇 백만원, 몇 억대라는 고가의 선물이 아니라 일이천원의 내용물이라도 기의는 이미 '선물'이라는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말이다. 사람에 따라 선물이라는 표상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게 되는데, 그 근거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사회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해 관계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자체를 예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선가 퍼온 모찌 포장지 (너무 예전에 퍼놓은 거라 출처를 밝힐 수 없어서 죄송)

그러나 다시 한편으로 '그렇다면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 자체가 실속이 없이 허례허식에 지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도 있다. 가뜩이나 친환경과 에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런 것들이 이제는 강제가 되는 -바야흐로-시기이기 때문에, 러시안 돌처럼 포장을 풀고 풀어서 작은 모찌 하나를 발견하는 즐거움만큼이나 그 즐거움을 위한 환경의 희생이 크다면 결국 즐거움은 탐욕이나 유희에 지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물론 짚 등을 이용한 환경 친화적인 포장들로 이런 걱정을 잠재울 수 있지만, 어차피 쓰레기의 발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 포장이다. -급 드는 생각은 : 하다못해 먹어 없앨 수 있는 것으로 만든 포장들, 오봉팽의 클램 차우더 같은 경우도 결국 더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는 아이러니로 귀결되는 게다- 

적절한 포장과 동시에 기표와 기의를 함께 담아내는 선물이, 포장이 없이 주어질 경우 그것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으니 -선물이 아닌 그저 나눔으로 여겨지게 되지 않을까- 재미있는 일이다. 자꾸 포장이 늘어가는 이유는, 선물 받는 이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약소한 떡이 들어있는 포장 꾸러미의 내용물에는 실망했던 (것 같은) 롤랑바르트와 같이 결국은 기대감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게다. 





분류없음 l 2009/05/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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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출 중인 내 파랑새.
분류없음 l 2009/04/26 23:22

어떤 폰트를 선호하십니까? 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최근에 다양한 사람들의 문서를 취합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꼭 한글 문서에 바탕체(였나?)로 써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문서 작성을 할 때는 꼭 그렇게 쓰게 된다는 게다. 확실히 어떤 기분이나 의도인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나는 최근 네이버가 뿌려준 나눔 고딕을 즐겨 쓰는데, 나름대로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문서를 쓸 때 모두 만족할만한 비쥬얼을 선사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로 이메일을 써야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게 될 경우에는 Book Antique, Georgia나 Times New Roman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런 폰트들로 문서를 작성하고 나면 뭔지 모르게 잘 작성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중요한 문서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역시 멀리서 볼 때의 정신적 만족감에 비해, 다시 제대로 읽어보면 맞춤법과 전치사/관사는 역시 빠져있다. 완전 망한 글인게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Book Antique, Georgia와 Times New Roman를 사랑한다. Comic Sans로 쓰여진 문서 따위는 누가 썼건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티스토리에서도 지원하지 않는다, 역시 문서를 코믹 산스 이런 체로 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돈의 문제인가, 혹은 아무 이유도없는건가) 

똑같은 사람이라도 중요한 자리에 가선 제대로 된 어휘로 표준어를, 사석에서는 다양한 은어와 속어들을 섞어 사용한다. 어디에서나 기대되는 말투가 있듯, 어디에나 기대되는 폰트가 있다. 타이프된 언어를 많이 접하게 될 수록 이런 기대감과 기대감에서 오는 괴리로 인한 배신감이나 (경멸..까지?) 웃음은 더 커진다. 

프리젠테이션을 마켓 펠트와 같은 체로 썼다면 좀 포멀하지 않거나 재미있는 방식으로 발표를 해보겠다는 작성자의 의도를 말 한마디 전부터, 혹은 프리젠터 입장 전부터 알아챌 수 있다. 그에 비해 일반 프리젠테이션에 많이 쓰는 폰트들(음.. 다들 무얼 쓰지? 난 주로 Century Gothic, Arial 같은 걸 썼었던 듯)이면 당연한 프리젠터를 기대하게 될 테다. 두고두고 얘기하지만 코믹 산스로 쓰여졌는데 진지한 프리젠터의 진지한 프리젠팅 내용이라면 정말이지 화들짝 깨게 되는 것이다.  

한동안 메신져 유저들 사이에서 폰트 깔기가 (사실상 모든 문자를 이미지화한 것이었으나) 유행해서 다들 귀여운 폰트들로 자신이 프렌들리함을 보여주곤 했다. 어떤 대화건 사실상 귀여운 폰트로 얘기하면 재미있거나 유머로 들리(보이)지만, 명조체로 얘기하면 대체 어떤 문맥에서 웃긴 것인지 아니면 나를 농락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폰트는 분명히 어떤 맥락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이라도 폰트가 달라지면 완전히 객관화된 문서가 되거나 완전히 감정적인 문서로 여겨진다. 같은 제임스 조이스의 글이라도 폰트를 달리해 독자들에게 줄 경우,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논문을 찾아보려 했으나 지금은 못찾았음..가독성 관련된 논문만 많아서,, 아쉬움..) 

튼, 폰트는 말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글을 쓸 경우, 혹은 프리젠테이션의 경우 조심스레 폰트를 골라야 하는게다.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폰트로 동일한 글을 쓴 경우의 예시
'데탑이 아니라 다양한 한글 폰트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로 썼는데 머 영어라 별반 차이가 안느껴지나?'

이런 스트립에 Times New Roman같은 폰트로 글을 쓴다면, 
완전 미친 듯이 웃기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
from Bunny Suicide

College career 페이지에만 이런 느낌의 글씨체와 그림이 있다. 
from Microsoft


+ Life on Earth l 2009/04/23 18:00

How Sweet.
+ muse-Jay l 2009/04/22 19:15

최근 누요크 타임즈에서 읽게 된 기사 중 (그렇다, 요즘 NYtimes에 심취해있다, 특히 웹 버전으로 다양한 하이퍼링크와 도우미 세션들이 편한데다가, 기사는 또 얼마나 야무지신지!)

튼, 기사 내용은 새로운 비디오 게임을 접한 사람들이 신체적인 통증을 겪고 있다는 것, 필자는 특히 자신의 예를 들어 Wii sports같은 게임에 푹 빠져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팔이나 어깨 등지를 다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실었다. 

To say that Wii injuries are an epidemic would be an overstatement, but they are proliferating along with the popular video-game system. Interviews with orthopedists and sports medicine physicians revealed few serious injuries, but rather a phenomenon more closely resembling a spreading national ache: patients of all ages complaining of strains and swelling related to their use — and overuse — of the Wii.

  NYTimes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역시 운동 중에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Wii로 스포츠를 즐기다가 얻은 부상에 대해서 완벽하게 망각한 채로 있었다는 점이다. 

Video game으로 즐기는 스포츠는 실제 운동장에서 즐기는 것만큼의 즐거운 (물론 그 즐거움이 완벽하게 똑같은 경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테지만) 기분과 운동을 했다는 정신적 착각에 빠지길 원하나, 운동의 다른 면들 특히 부상과 같은 부정적인 속성들에 대해서는 '어머나!'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Wii가 일반적인 사람의 움직임대로 인터랙션하도록 만들어진 인터페이스라는  점에서, Wii 개발자들은 당연히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었을게다. 오히려 이 기사에 아니 이런 것도 몰랐나?라며 뒷통수를 잡고 있을수도.. 당연히 사람들의 근육을 운동할 때와 유사하게 움직이게 하는데, 그에서 비롯한 증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전까지 Video game의 부정적인 속성이라고 대서 특필되어 부모들이 그를 근거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게 만들었던, 예를 들어 시력 감퇴, 쇼크, 집중력 감퇴(혹은 상승), 실생활 부적응과 같이 약간은 형이상학적이면서 정신적 효과들에 놀라워했다. 당장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일 뿐 TV/Computer 앞에 앉아 있는 행위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다니, 믿을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친구들을 꼬셔가며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만 할 수 있던 운동을  아무 때나 할 수 있게 되었다. TV/Computer 앞에서 게임을 할 뿐인데 왜 몸까지 욱신대는 거야?라며 이제 게임이 주는 육체적 피로감에 충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망할놈의 Wii? 

디지털 풍선을 부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할 때, 당연히 게이머에게 부과되는 '불기'라는 인터랙션은 사람이 실제적으로 풍선을 불 때 겪는 신체적 변화들은 - 입이 마른다거나 입과 목 주변 근육이 뻑뻑해진다거나- 그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웃풋이 가상 현실virtual world 속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조작하는 나는 어쨌든 리얼 월드real world에 살고 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쨌든 당신은 운동 중인 것. 

이런 것을 가지고 Wii가 나의 뒷통수를 때렸네,, 이런다면 당신은 이율배반적인 사람! 
Wii Fit에 자신을 등록시켜 매일 눈에 보이는 변화를 기대하면서도그런 것으로 인한 신체적 피로와 고통을 감내할 수 없다면, 이제 방법은 하나 뿐이다. 아니..... 없나?

튼, 그러므로 운동 상해를 방지하기 위해 Wii sports를 하기 전에는 꼭 준비 운동을 해주세요. 
조만간 국민체육건강공단(이런 이름의 무엇이 존재하긴 하는건가?) 이런데서 Wii sports를 위한 준비 운동 지침이 각 가정에 배포될 지도 모르겠다. :)

아니, 이러고들 계시잖아요~ :)

+ Life on Earth l 2009/04/22 14:41

Dogbert's parody of Mark Twain. This's why I love Dilbert!

"Dance like nobody's watching;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s listening;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Mark Twain
+ Life on Earth l 2009/04/15 21:43

CHI라는 큰 학회에, 아니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처음으로 참석하는데 그것도 top-tier에 드는 CHI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는 기대감 반, 걱정 반이 앞섰다. 특히, Student Research Competition이라 피해갈 수 없는 심사위원들과의 대면때문에 걱정이 100배는 앞섰다는... 

튼, Wicked를 최고로 좋은 자리에서 보고 -SOHO에서 놀다가 20분이나 놓쳐서 아쉬웠다는, 진짜 누요크의 교통은 disastrous+unpredictable!!-

잠깐 정리, 난 누요크에서 무엇을 하였나?


Billy Elliot : wow, 빌리 뿐 아니라 아이들의 개구짐과 춤에 반해버렸다는... 미쿡에서 영국 액센트로 뮤지컬을 감상하니 나름 새로운 기분 ;)
Wicked : WOW~, 운이 좋게 진짜 좋은 자리에서 -물론 비싼 돈을 주고 ;)- 보게 되었다. 이것이 미쿡식 뮤지컬인가? 할 정도로 쇼의 성격이 강하고 무대도 화려하고, 노래는 너무너무 잘하고! 
MET opera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때문에 부러 예약해서 본 오페라 ;) 팔리아치와 함께 공연되었는데 (이 두 작품은 함께 공연되는 것이 보통이란다) 생각보다 팔리아치가 너무 좋았다는. 물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에서는 전 좌석이 흥분했고.. (급해서 컨버스 신고 갔는데 다들 gossip girl 처럼 드레스 입고 오셔서 부끄)
Guggenheim : JUST GREAT. 5번가의 단아함을 휘감는 건물 뿐 아니라, 전시 내용과 소장 작품이 대단대단.. 
Whitney : 자다가 넘 늦게 가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소장 작품 말고 지금 전시 내용은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이제는 진부한 거 아니야.. 했던 전시,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 굳굳
MOMA : 와우.. 진짜 시장바닥에 온지 알았다. 역시 작품들은 굳굳, 센스 굳굳, 좋겠다.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 사실 갈까 말까하다가 대체 왜 글케 가야한다고 써있는지 궁금해서 링컨센터 갔다가 들른 곳. 그러나 예상외로 오래있어서, 그 뒤의 일정에 차질.. -ㅁ-, 튼 그냥 이런 뮤지엄들이 이렇게나 있으믄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하믄서 교육의 차이 때문에 괴로워했던 기억.
+ other sightseeing

New York의 정신없음의 미the beauty of the busy-ness?를 뒤로하고 보스톤으로 오는 Bolt Bus에서의 귀여운 소년과의 조우-아무래도 Harvard를 다닐 것이라고 상상, CHI에 왔으믄 좋겠다 했는데 역시 컴퓨터 피플들은 그렇게 안생겼다.. 흑흑-부터 나름 보스톤에 대한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는..아 물론 보스톤 사람들의 오만함은 나름 멍미-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타임스퀘어의 물이 가장 안좋다는 *사실*을 친구와 합의봤다. Soho나 Upper East는 늠흐 좋다*^^*- 

anyway, 시간을 잘못 알고 가서 1등으로 포스터를 붙이고 잠시 MIT와 하버드 구경. 지인덕에 하버드와 펍 구경도 해서 나름 좋았으나 난 웬지 MIT에 더욱 끌리는 것.. 흠

poster앞에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 줄 알고 갔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다들 쑥스러워서 자기 포스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거나 아예 홀에 안왔댄다. ;) 나도 다른 paper나 panel 발표들을 구경하느라 내 포스터 앞에 붙어있진 않았으나, 함께 붙여놓은 poster 소개용 A4용지를 많이들 가져가서 먼가 기분이 좋았다는 ;)

내가 한껏 기대를 하고 가서 그런지, CHI의 각 세션들은 흥미로운 것도 아닌 것도, 혹은 대단한 것도 그냥그런것들도 많았다. 원교수님과 잠시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 우리의 연구들이 오히려 나은 것들도 있다는 것과 연구를 왜 했는가에 대한 스토리 텔링만 제대로 전달하면 손색없는 연구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제목이나 연구 소개로 혹-했다가 최종 결과는 아 그래- 이 정도의 내용들도 많이 발표되고 당연한 것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다. *물론 대단한 것들도 많고, 나름 HCI의 앞으로의 향방을 이야기한 것들도 있고, 패널들은 대단하다* 

어떤 연구든 진짜 신기한 인터페이스나 기술을 개발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만하다. 문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왜 가졌는가와 그래서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이다. 세상에 기여할 수 있으려고 무슨 희귀병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런게 궁금해서 좀 살펴봤더니, 사람들은 이렇더라, 이렇게 사용하더라, 앞으로 이렇게 될 거 같드라, 이런게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님 이런건 좀 좋아보이지 않아? 이런 종류들이다. 

이번에 와서 또 느낀 것은, 최신 연구들이 있는가하면 또 기존의 연구들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내 연구는 여행을 위해 tag based recommendation을 해보면 어떨까였는데 예전에 tag는 너무 진부한 아이템 아닌가?라는 코멘트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tag 자체는 오래되었으나, old가 out-of-date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래된 것들도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면 {혹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계속 사용될 것이고 그렇다면 연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튼, CHI에서 느낀 것은 연구에 자신감을 가지자? ;)

또 하나는, 아무래도 쪽수가 많아서인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영향력을 학계에서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앞의 포스터를 붙인 영국 여학생은 panel 토의에 들어갔다가 cultural difference에 대해 얘기했다가 미국의 예니까 excellence하지 않냐 비슷한 얘기를 들었댄다 {물론 이 학생이 미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오바했을 수 있다} 유럽이나 아시아 쪽의 연구가 나오면 당연히 나오는 것이 문화 차이인데, 미국에 대해 그 얘기를 하니 학계를 좌우하는 미국인 패널들이 약간의 오만한 대꾸를 했나보다. 예민하게 생각하면 은연중에 '머야, 얘네는 우리 좀 끼워준거야?'할 수도 있는데, 그만큼 학계는 영어가 좌우하고 있고 그마만큼 미국인들의 연구가 많이 submit되고, 그만큼 accept 비율도 높을 수 밖에 없겠다. 머 아쉬운대로 성과를 내서 인정받고 레퍼런스가 되고 싶으믄 일단은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빠른 방법인 것 같지만, 긴 안목으로 학계의 소수 인종이 되지 않기 위한 생존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덧. Bill Buxton의 프리젠테이션을 눈 앞에서 들었다. *역시 panel 세션이 가장 들을만하다* 재기발랄의 극을 달리셨다는, 누군가 유투브에 올려놓으믄 가져다놔야겠다는.

어쩄든, 내일까지 CHI09는 계속된다.


+ Life on Earth l 2009/04/09 11:35
TAG CHI09, HCI


Skins의 시즌 3이 시작.. 한지 오래되었다. 
벌써 season final이 예고되었고, season1-2의  에피소드 전개 방식대로 각 인물들이 한 번씩은 다뤄졌다. 

과연 Effy하나만으로 시즌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Freddie의 등장으로 잠시 잦아들었으나 1,2시즌이 전체 주인공 하나하나의 비중이 균등하게 분배되고 제 각각의 매력을 가진 반면 아무래도 시즌 3에서는 Effy와 Freddie는 언제쯤 러브러브 모드로 진입하게 될 것인가에 목을 매개하는 뻔한 스토리 전개를 가졌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결국 나머지 배역들은 조연급으로 치닫고, 주인공들을 빛내주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슬픈 구도로 전락했다. 

모든 비중있는 남자주인공들(Cook, JJ, Freddie)이 Effy를 향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1인 여자 주인공 구도는 (물론 Effy같은 주인공이기 때문에 너무 이해가 가긴 하나) season1,2에 비해 훨씬 비현실적이다. 적어도 각각의 청소년들이(아 물론, 배역도 이제 Effy가 자랐기 때문에 진학반이긴 하지만)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면 아무래도 Effy는 너무 예쁘기 때문에 그냥 트렌디 드라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시즌1-2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특출난 외모는 아니나 각자 개성에 넘친 것에 비하면, 시즌3의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하나 다 특출난데 극적인 개성만 남아 매우 센세이셔널하기만 하다는 점이 아쉽다. {이상하게, 이 시즌을 보면서는 자꾸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지는 desperate housewives가 떠올랐다. 그만큼 나에게는 먼나라 같은 얘기였다는}

아 그렇다고, 내가 시즌3을 너무 혐오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닌데.. Freddie는 증말 완소 ㅠㅠ

title 역시 시즌 1,2와 동일하게 만들어졌다. (음악이 조금 밝아진 것 같은데, 믹싱을 다시했는지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는..) 역시 박수를 치게 하는 멋진 타이틀~ ;)
분류없음 l 2009/03/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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